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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들리 퍼킨스. 우탱클랜의 ODB가 술주정을 하듯 꿱꿱거리며 랩을 한다면(오해 없으시길 저 ODB 팬이에용) 더들리 퍼킨스는 진짜 노래를 한다. 처음에 Produced By Madlib 이 문구 하나만 믿고 샘플을 찾아 들었을 때만 해도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목소리는 분명 Declaim인데 랩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힙합 프로듀서인 매드립의 비트 위에서 더들리 퍼킨스는 분명 노래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에이 이거 뭐야, 하고선 한동안 디클레임 아니 더들리 퍼킨스에게서 관심을 거두고 있었다.
시간이 좀 지나서, '슬슬 매드립 비트 좀 갈무리해 볼까?' 싶던 차에 더들리 퍼킨스의 솔로작들을 다시금 집중해서 듣게 되었다. 디클레임의 명의로 발표한 앨범들은 정말 좋게 들었다. 특히 매드립과 캔킥이 반씩 프로듀스한 Andsoitisaid 앨범은 완전 감동의 도가니였다. 다분히 정통적인 랩을 한다고 볼 수 있는 한식구 wildchild나 M.E.D와는 전혀 다른, 언뜻 들으면 랩에도 안 어울리고 노래에도 안 어울리는 괴상한 목소리로 디클레임은 천연덕스럽게 랩을 하고 있었고 신기하게도 매드립과 캔킥(그리고 오노)의 비트 위에서 그 목소리는 아무런 무리없이 어우러졌다. 들으면서도 궁금했다. 왜 이렇게 좋을까? 분명 내가 좋아할 만한 목소린 아닌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매드립과 캔킥의 비트가 워낙에 당시로서는 괴상망측한 축에 속했으니 전혀 상식적이지 않은 디클레임의 랩이 마치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식으로 어우러졌던 것이 아닐까 싶다.
문제는 더들리 퍼킨스였다. 좌우 스피커를 오가는 정신없는 비트는 자제한 채 웬놈의 꿀 같은 멜로디들을 갖다발랐는지 싱어 하나만 데려다 놓으면 영락없는 알앤비 앨범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은 비트, 거기다가 노래를 하고 있는 건 바로 잊을 수 없는 목소리로 랩을 하던 前 엠씨 디클레임, 더들리 퍼킨스. 엠씨들이 자기 정규앨범에 스킷이나 인터루드 삼아 한두 곡씩 넣는 가창곡도 엔간해선 잘 안 듣는 나로서는 처음에 싱어 더들리 퍼킨스의 음색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아우 정말 매드립 비트가 아깝다 여기다가 누가 랩만 했어도...' 솔직히 그런 생각 안 했다면 거짓말이다.
매드립 열풍이라는 게 한국에 불어닥친지도 이젠 꽤나 오래되었고, 처음 매드립이라는 미친 과학자의 비트를 들으며 경악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드럼 샘플만 들어도 대충 매드립인 걸 눈치 채는 판국이다. 이런저런 매드립 비트를 접해보고 나니, 뭐 안 그런 프로듀서가 어디 있겠느냐만, 매드립 역시 대박 앨범 몇 장만 가지고 판단할 좁은 음악세계를 가진 프로듀서는 아니라는 걸 알았고, 주변에서는 매드립 어렵다 미친 과학자다 외계인이다 말은 하지만 알고보면 그는 '좋은음악 만들기'에 몰두하고 있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그건 매드립의 숱한 충격파에 내가 너무나 익숙해져 있는 탓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내가 매드립의 결과물들을 훑다가 마지막으로 도착하게 된 지점이 바로 더들리 퍼킨스였고 나는 디클레임의 앨범을 꺼내서 한참 동안 들어본 후 다시 더들리 퍼킨스를 들으며 왜 더들리 퍼킨스가 노래를 할 수밖에 없었을까를 생각했다.
그가 랩을 완전히 그만둔 것 같지는 않고, 이런저런 다른 프로젝트성 앨범에서 여전히 랩을 들려주고 있긴 하지만 그간 더들리 퍼킨스 명의의 앨범들을 하도 많이 들어서 그런지 이제는 그의 랩보다 노래가 더 좋게 들린다. ODB처럼 랩과 노래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는 괴성을 들려줄 때도 있지만 ODB가 그랬듯 더들리 퍼킨스에게도 묘한 매력이 있다. ODB든 더들리 퍼킨스든 솔직히 한식구들(우탱클랜과 스톤스로우) 사이에서 지명도가 비교적 낮다면 낮다고 할 수 있겠지만, Rza가 특유의 비트로 ODB를 확실하게 뒷받침해준 것처럼 더들리 퍼킨스의 뒤에는 매드립이 있어서, 랩을 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멋들어진 소울 보컬도 아닌 독특한 더들리 퍼킨스의 음색을 기가 막히게 돋보이게 해주고 있다. 모르긴 해도 더들리 퍼킨스의 이름으로 발매된 앨범 두 장은 더들리 퍼킨스에게나 매드립에게나 Madvillain에 맞먹는 과감한 시도가 아니었나 싶다. 좋은 음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한결 같았겠지만 두 장의 앨범은 서로 다른 길을 택한 것이다. 매드빌리언이 기괴하고 낯설었다면 더들리 퍼킨스의 앨범들은 너무나 노골적으로 따뜻하게 만들어졌다.
그렇다. 너무 진부해서 끝내 안 쓰려고 했던 말을 기어이 써야겠다. 소울풀하다. 9th나 칸예가 소울풀하다는 것과는 많이 다른 의미로 소울풀하다. 더들리 퍼킨스가 "나도 노래를 할 수 있다고" 하니까 매드립이 덩달아 "나도 이지리스닝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하는 것 같다. 뭐 어차피 소울풀하다는 것도 상대적인 거겠지만 말이다. 스톤스로우 앨범들 중에서 유독 인기가 없는 듯하지만 '힙합 프로듀서 매드립'과 '엠씨 디클레임'이라는 강박에서 조금만 벗어나 마음 편하게 먹고 찬찬히 들어보면 "야 이거 죽이네!"라는 탄성이 절로 나오게 되지 않을까 싶다. 잘 부르지 못해서 오히려 정감이 가는 더들리 퍼킨스와 평소보다 어깨 힘을 많이 뺀 듯한 매드립이 빚어낸, 어찌 되었든 듣다 보면 좋아하게 되는, 아니 안 좋아할 수가 없는 좋은 앨범이다. 그냥 넘어가지 말고 꼭 한 번씩 들어보기를 권한다. 내친김에 두번째 앨범 Expressions 까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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