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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의 본질이라는 것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접근이야 말로 음악인이 가져야 하는 태도라 생각하는 사람에게 네크로의 음악은, 길 가다가 우연히 밟게 된 개똥과도 같이 여겨질 것이다. 음악이 아니라 차라리 하나의 해프닝이라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을 것이다. 내가 네크로의 음악을 좋아하는 이유는 곰곰이 생각해보면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자신을 음악평론가라고 말하지 않으면서도 늘 평론가 시늉을 하는 수많은 엄숙주의자 혹은 본질주의자들에게 자신의 랩과 가사와 음악 모든 면을 통해 통쾌하게 엿을 먹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가장 크다.
처음에 네크로라는 이름을 접하게 된 건 넌픽션의 그 유명한 앨범에서였다. 그 앨범에 도움을 준 초특급 프로듀서들의 이름값이란 얼마나 으리으리했던가! 처음에 네크로의 이름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그 엘범에서 나중에까지 계속 듣게 되는 것은 피트락도 프리모도 라지프로페서도 아닌 네크로가 만든 곡들이었다. 울끈불끈 근육질의 사내에게 어울리는 옷차림은 유명 디자이너의 스타일 쫙 빠진 옷이 아니라 팔뚝이며 가슴팍이며 허벅지를 온통 드러낸 시원시원한 옷이 아닌가! 격렬한 랩핑의 넌픽션 크루에게 어울리는 프로듀싱은 결국 명인 비트메이커의 터치가 아니라 미국 3류 슬래셔 호러무비에나 나올 법한 조악하면서도 단순하고 화끈한 공격적인 백뮤직이었다.
무슨 르자도 아니고 말리말도 아니고, 네크로는 이후 넌픽션 크루의 솔로앨범과 프로젝트 앨범들을 모조리 자기 손으로 제작하는 와중에 자신의 솔로앨범까지 꼬박꼬박 발표하는 불 같은 창작욕을 보여주었다. 솔직히 그 많은 곡들의 스타일이 제각각 다 달랐다면 오히려 대단하다는 찬사를 보내고는 그걸로 끝이었을 거다. 네크로의 놀라운 점은 그 모든 곡들의 스타일이 한결 같다는 것에 있다. "GORY DAYS랑 CIRCLE OF TYRANTS는 많이 다르지 않나요?" "고어텍스 앨범과 일빌 앨범은 분위기가 영 다르던데요?" 아 물론 그렇다. 하지만 그런 사운드적인 차이들을 소소한 것으로 눌러버리는 네크로 특유의 개성에 나는 더 주목한다.
13일의 금요일이나 헬로윈 같은 슬래셔 무비를 좋아하는 사람은 알겠지만, 그런 영화들에는 특별한 스토리도 없고 연기파 배우의 농익은 연기도 없고 감각적인 화면구성도 없다. 어느 초인적인 나쁜놈이 나와서 등장인물들 그냥 다 죽이는 거다. 모든 살인행각이 다 끝난 후, 결국 싹 다 죽여서 아무도 남지 않은 장면 혹은 (결국 미쳐버린) 생존자가 딱 한 명 남아 구급차에 실려가는 장면으로 영화가 마무리되면 '지금까지 다 영화였소'하며 약올리듯 올라가는 엔드크레딧을 보는 기분, 사정없이 긁어대는 바이올린 소리 혹은 싸납게도 불러제끼는 헤비메틀 보컬의 열창을 배경으로 목이 잘리거나 얼굴이 쪼개지거나 등이 뚫리거나 불에 타 죽는 청춘남녀들을 보는 기분, 뭔가 통쾌한 것 같으면서도 기분 더럽기 그지 없지만 뒤돌아 서고 나서도 또 한 번 보고 싶어지는, 양심에 왠지 찔리는 듯한 그런 기분, 그런 중독성이 바로 네크로다.
잘은 기억나지 않지만 네크로는 힙합씬에 뛰어들기 전에 그라인드 코어 밴드에서 베이스인가 드럼인가를 쳤다고 한다. 그라인드 코어란 무엇인가? 이쪽 음악을 전혀 듣지 않는 사람들에게 데스메틀과 그라인드 코어의 차이를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어차피 둘 다 장르용어고, 굳이 말하자면 재즈 힙합과 언더그라운드 힙합의 차이처럼 애매하고 때로는 구별 자체가 불필요하기도 하다. 쉽게 말하자면 굉장히 극단적인 음악이라 할 수 있으니 그냥 익스트림 뮤직이라고 해두자. 아무튼 우리나라에도 십여년 전의 어이없는 '악마주의 파동'으로 비교적 잘 알려진 카니발 콥스라는 밴드의 자켓을 보면 대충 이들이 추구하는 분위기를 알 수가 있다. 임신한 여성의 배를 갈라 태아를 끄집어낸다든지, 배가 갈린 시체의 가랑이에 웬 피투성이 여성이 고개를 처박고 있다든지, 무덤에서 방금 뛰쳐나온 듯한 시체가 무슨 자축이라도 하려는 듯 뱃속의 창자를 끄집어내어 건배를 하고 있다든지... 물론 전부 그림이지만 그런 자켓이 준 충격은 당시(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반) 상당했다.
그런 것들이 90년대 후반으로 와서는 선배들에게 뒤질세라 후배 밴드들이 자켓에 실제 사진(!)을 쓰기 시작했다. 한때 우리나라게 엽기 열풍이 불면서 극소수 사람들에게 시체사진이 유행했던 적이 있으니 그때를 기억하는 사람은 알 것이다. 온갖 사고로 죽어버린 사람들의 훼손된 몸을 찍은 생생한 사진, 혹은 의학적 부검이 이루어지고 있는 신체를 그냥 대놓고 찍은 사진, 뭐 그런 것들을 자켓에 박고 밴드 로고 붙이고 해서 앨범으로 그냥 발매해버리는 거다. 2000년대 후반인 지금이지만 미국과 유럽의 언더그라운드의 극악무도한 밴드들은 여전히 그런 자켓으로 앨범을 내고 있다. 실제로 노르웨이의 모 밴드는 엽총으로 머리를 쏘아서 자살한 보컬리스트의 자살 직후의 사진을 찍어 자신들의 라이브 앨범 자켓으로 쓰는 우정(?)을 과시하기도 했다.
자켓도 자켓이지만 가사는? 살인과 강간과 마약, 때로는 그 셋을 모두 버무려놓는, 제정신이라고는 도저히 할 수 없는 내용을 버젓이 앨범 속지에 적어놓는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어두운 욕망과 잔인한 충동을 너무나 적나라하게 묘사해놓은 가사에 브러시드럼과 색소폰으로 연주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그들은 울부짖고 굉음을 울리며 부서져랴 때린다. 그게 바로 데스메틀이다. 그럼 네크로는?
네크로의 마인드는 상당 부분이 그러한 언더그라운드 데스메탈 혹은 그라인드코어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 심각한 신체 훼손을 다루는 고어 그라인드(gore grind)나 일본의 변태 AV 뺨치는 아트워크를 자랑하는 포르노 데스메틀도 있지만 90년대의 명 밴드 카니발 콥스 하나만 보아도 그쪽의 정서가 네크로에게 미친 영향이 어떤지 알 수 있다. 살인과 강간을 꼼꼼히 묘사하는 가사나 피투성이의 부클릿, 인간이 어디까지 타락할 수 있는지 도전하는 것처럼 보이는 무시무시한 음악들은 십년 후의 네크로에게 고스란히 전해진 유산이었던 것이다. 소울과 재즈에 대한 이해? 옛 흑인음악에 대한 동경? 내가 보기엔 그런 거 전혀 없다. 네크로는 꼴리는 대로 음악 만들고 꼴리는 대로 랩한다. 낯뜨거워서 도저히 읊을 수 없는 가사를 천연덕스럽게, 누구보다도 하드코어하게 랩한다.
네크로의 정서가 90년대 데스메틀/그라인드코어 밴드에게서 왔다면 그 밴드들의 정서는 어디서 왔을까? 나도 말로는 네크로가 어디어디에서 영향을 받았네 하며 글을 쓰고 있지만 사실 네크로가 어렸을 때 접했을 것이 분명한 그 익스트림 뮤직에서 네크로 자신의 모든 정신적 성향을 물려받았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네크로가 카니발 콥스나 오비추어리 같은 데스메틀 밴드들의 음악을 들으면서 살인과 강간과 폭력과 마약에 대한 기초관념을 습득했으리라고는 보지 않는다. 그런 소재들 자체는 미국사회의 어디에서나 볼 수 있고 누구하고든 이야기할 수 있을 텐데 굳이 음악에 영향을 받을 필요가 없다. 네크로는 단지 '이런 소재들로 음악을 만든다는 것이 가능하구나, 음악을 만들고 가사를 쓰며 어떤 메세지를 말하는 것에는 한계도 없고 성역도 없구나, 그 어떤 쓰레기 같은 것도 음악이 될 수 있구나'라는 하나의 가능성을 그런 음악들을 통해 똑똑히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는 나이를 먹어가며 자기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하게 된 것이다. 90년대의 위대한 데스메틀 밴드들이 그랬던 것처럼.
네크로의 실제 삶은 어떨까? 나로선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홈페이지에 자기가 건드린 여자들 사진(요새는 없어졌다)을 죄다 올리고, 포르노 사업에까지 손대는 듯한 꼬라지를 보면(유명한 포르노 배우 lanny barbie의 사진을 넌픽션 크루의 앨범 속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적어도 '모범적인' 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해도 그가 써내는 가사들은 순전히 오락을 위해, 즐기기 위해서 쓴 것이라 생각해도 될 것이다. 오히려 실제로 갱단의 멤버로 활약하며 총질하며 싸워댄 90년대 초반의 갱스터 랩퍼들에 비교하면 네크로는 어쩌면 그냥 컴퓨터 앞에서 야동이나 보며 침 흘리는 소심한 백인 청년일지도 모른다. 가사로는 뭘 못 쓸까? 상상 속에서는 누군들 강간을 못할까?
네크로의 앨범들에 게스트로 참여하는 메틀 뮤지션들의 이름은, 솔직히 이쪽 음악에 밝은 사람들이 보면 입이 떡 벌어질 초호화 라인업이다. 오비추어리, 브루털 트루스, 세풀투라, 테스타먼트, 앤스랙스... 와 정말 네크로의 인맥은 엄청나지 않은가!! 램오브갓이나 헤잇브리드, 슬립낫 같은 밴드들의 멤버 이름이 보이는 걸 보면 2000년대 이후의 익스트림 뮤직씬에도 인맥이 뻗치고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네크로와 메틀 뮤지션과의 협연은 솔직히 내겐 별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네크로 스타일은 무식하게 짓찧는 비트에 3류 호러무비 백뮤직을 연상시키는 기괴한 샘플을 합친, 즉 네크로 데뷔작과 같은 스타일이다. 네크로 본인은 자기 음악에 뭔가 더 강한 느낌을 주고자 헤비메틀적인 연주를 도입했겠지만 사실 네크로 같은 정서에 기타와 베이스와 드럼이 더해진 연주를 들으려면 차라리 게스트로 초빙한 바로 그 밴드들의 음악을 듣는 것이 훨씬 낫다. 그들의 음악은 충분히(그리고 더할나위없이) 강하기 때문이다.
일빌도 고어텍스도 프로듀싱을 하지만 역시 네크로의 손맛이 최고다. 일빌도 고어텍스도 랩을 하지만 랩 역시 네크로가 최고다. 상식과 도덕의 측면에서 보면 인간 이하의 쓰레기 같은 음악을 들려주고 있지만, 정말 잘하긴 잘한다. 흑인음악의 본질? 원초적인 바운스감? 건전하고 의식적인 목소리? 그런 걸 네크로의 음악에서 기대하면 안된다. 깊은 밤 너무 심심해서 다운 받아 보는 공포영화 한 편 같이 네크로의 음악은 그냥 정신줄 놓고 즐기면 된다. 와 정말 사람이 이럴 수도 있겠구나 하면서 낄낄대다가 문득 생각이 나면 네크로 씨디 꺼내고 피트락을 들으면 그만인 거다. 하지만 고작 몇 가지 기준으로 좋은 음악과 나쁜 음악의 서열을 매기는 것에 맛들린 사람들에게 네크로의 음악은 언제까지나 한 백인 싸이코 또라이가 대충 만들어내는 3류 힙합으로밖에는 인식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런 폼 잡는 음악평론가들에게 대놓고 엿을 먹이는 네크로의 기세등등함이 너무 좋다.
이러다가 내가 총 하나 구해서 신도림 역에서 사람들 마구 쏘아 죽이기라도 한다면 내 방에서 발견될 네크로 씨디가 또 문제가 될 거다. 이런 거 들으니까 사람들 정서가 망가지고 불건전해진다느니. 하지만 음악 몇 곡에서 사람을 죽이는 데 필요한 영감을 얻는 사람은 똑같이 다른 음악 몇 곡에서 평온함을 찾을 수 있는 법이다. 사람이 사람을 죽일 때 영향을 주는 건, 모르긴 해도 음악 몇 곡이 아니라 그 사람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납빛의 증오심이 아닐까? 이 글을 네크로 4집에다 쓰는 이유는 이 좋은 앨범에 리뷰가 하나도 없어서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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