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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힙합 열풍은 끝났을까? 아니, 애초에 열풍이라 할 만한 게 있었을까? 잘 모르겠다. 언젠가부터 고유명사처럼 쓰이기 시작한 '재즈 힙합'이라는 말만큼이나 숱한 오해 속에서 아무렇게나 쓰인 장르 용어도 없을 것 같다. 재즈라고 쉽게 말하지만 재즈라는 장르 속에는 얼마나 많고 많은 스타일이 있는가? 재즈에 비하면 역사가 턱없이 짧은 힙합도 스타일로 따지면 첫째부터 막내까지 한 줄로 줄 세워도 끝이 안 보일 텐데 말이다.
힙합이긴 힙합인데 재즈적인 요소가 가미된 힙합이 재즈 힙합이라면, 도대체 어떤 재즈의 요소가 들어갔을까? 스윙? 비밥? 쿨? 프리? 퓨전? 재즈를 듣는 사람이 '재즈 힙합'이라는 말을 들으면 우선 그것부터가 궁금할 것이다. 하지만 재즈 힙합이라고 분류되는 음반 몇십 장을 죽 듣고 나면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까 싶다. "이거 그냥 재즈풍 반주에 랩 얹은 거 아냐? 이런 걸 샘플링이라고 하는 거니?"
재즈든 소울이든 오래된 음원에서 따온 조각들을 써먹어 가며 전혀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소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 디제잉 혹은 힙합 비트메이킹의 한 방식이라면 결국 재즈 힙합이란 동어 반복일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닭고기 치킨'이나 '치즈 피자'라는 말에서 어색함이 느껴지는 것처럼, 어차피 숱한 힙합 음악 속에는 옛 재즈 음원이 숨쉬고 있으니 만큼 굳이 재즈라는 말을 붙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재즈 힙합이라는 말이 쓰일 수 있다면 소울 힙합이나 훵크 힙합, 블루스 힙합이라는 말도 쓰여야 맞다.
근데 사정은 그렇지가 않았다. 재즈를 잘 듣지 않는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는 재즈의 이미지 그대로, 재즈 힙합이라는 말은 재즈 힙합을 듣는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고 또 무수히 사용되었다.
그 와중에 재즈 힙합이라는 말이 퍼지기 시작하고 조금씩 인기를 얻자 아예 재즈 힙합임을 표방하고 발매되는 앨범들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했다. 십수 년 전 한국에서의 재즈 이미지란 고작 차인표가 드라마 속에서 분위기 잡으며 색소폰 부는 것이 전부였던 것처럼, 재즈 힙합이라는 가벼운 장르 용어 속 재즈는 비트가 깔리기 좋은 피아노 소절이나 관악기 소절, 기타 소절 혹은 더블 베이스 샘플이나 드럼 샘플, 보컬 샘플의 이미지가 전부였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하드밥 재즈나 심오한 프리 재즈 부류의 샘플은 쓰일래야 쓰일 수가 없었다. 랩을 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빠르기의 박자가 필요하니까 그에 알맞은 소절을 뚝 떼어 오거나 아니면 재조합을 해야 했다.
적잖은 사람들이 그런 '조립식' 힙합 뮤직에 짜증을 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요리책에는 간장 1큰술, 다대기 2큰술, 된장 풀어 자작하게 5분간 끓이고... 뭐 이런 식으로 나와 있지만 숫자는 요리의 전부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좋은 샘플을 갖다 쓰고 쿵쿵딱 쿵딱 힙합 비트를 찍어도 소리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지지 않으면 음악은 영 어색해진다. 어색함도 어색함이지만 사실 무수하게 쏟아져 나온 '재즈 힙합'의 가장 큰 문제점은 진부함이었다. 뭘 들어도 전혀 새롭게 들리지 않았다. 재즈 음원을 갖다 쓴 게 하루 이틀도 아닌데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재즈 운운해 가며 적당히 말랑말랑한 샘플에다 적당히 흥겨운 비트만 찍었다고 '재즈 힙합'이라는 장르 이름까지 얻으며 음악판에서 어엿한 하나의 장르로 대접을 받게 되어 버린 것이다.
누자비스는 재즈 힙합일까? PUTS는? 루츠는? 피트롹은? 제이롤스는? 주라식 파이브는? 딜라는? '재즈 힙합'이라는 용어가 애초부터 붕 떠 있었던 판국에 재즈 힙합과 뮤지션들을 연결지으려는 수많은 시도들이 더해졌고 때에 따라서는 격렬한 논쟁까지 붙었다. 그리고 그런 시도들과 논쟁들은 대부분 무의미하게 끝났다. 재즈도 힙합도 너무나 넓은 스펙트럼을 가지는 장르이기도 했고, 재즈 힙합이라는 이름을 달고 쏟아져 나온 앨범들이 대부분 조립식 음악이라는 유행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프리를 넘어 아방가르드를 넘어 포스트밥을 넘어 퓨전을 넘어 현대 재즈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아무도 모른다. 요즘 힙합은 또 어디로 가고 있을까? 아는 사람 없다. 그런데 난데없이 재즈 힙합이라니! 한낱 장르 용어 하나에 사람들이 너무 많은 기대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유럽과 일본에서는 엇비슷한 '재즈 힙합' 앨범들이 나오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그런 앨범들을 사기 위해 아낌없이 지갑을 연다. 지펑크처럼 재즈 힙합도 이젠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능한, 소위 '공식화된' 소리를 들려주고 있긴 하지만 지펑크는 그 속에서 굉장히 다양한 스타일들이 부글부글 끓고 있는 장르인데 반해 재즈 힙합은 용어 자체가 동어 반복일 뿐더러 장르 용어 두 개를 갖다붙인 이름 자체가 음악을 어떤 고정된 틀에 가두어 버린 느낌이 있다. 재즈 음원을 샘플링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뭔가 재즈같은 느낌을 내야 하기 때문에 재즈 힙합은 결국 재즈 분위기를 내는 힙합, 즉 무드 힙합(또는 재즈틱 힙합?)으로 귀결된다. 말이야 새로 만들면 그만이니까.
나는 언젠가부터 재즈 힙합이라 불리는 음악들이 너무나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재즈 힙합이라는 말부터가 지긋지긋했다. 피아노나 트럼펫 소리가 들리는 랩음악은 한동안 일부러 멀리했다. 하지만 일매틱이나 레저렉션, 메인 잉그레디언트 같은 앨범들은 가끔 들었다. 재즈 힙합이라는 말이 널리 쓰이기 전에 이미 재즈 힙합을 보여주고 있던 앨범들이 과연 '진짜'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가장 자주 들은 앨범이 바로 PUTS의 앨범들과 사운드 프로바이더스의 이 앨범이다. 재즈 힙합이라면 도리질을 치면서도 PUTS의 앨범들과 이 앨범만큼은 도저히 끊을 수가 없었다.
이 앨범이 일매틱이나 레저렉션같은 앨범들과 공유하는 것이 있다면 그건 '재즈 힙합'이라는 가오를 잡지 않았다는 것에 있지 않을까 싶다. 듣다 보면 비트와 그 위에 덧씌워지는 악기 소리들이 참으로 자연스럽게 얽혀, 샘플링이 아니라 애초에 연주자들 불러 모아 함께 만들어 낸 음악처럼 들린다. 듣는 취향이야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비 온 뒤에 죽순 나오듯 엄청나게 쏟아져 나온 그 많은 재즈 힙합들을 거쳐 오고 나니 이 앨범이 가지고 있는 미덕을 내 귀로 더 뚜렷하게 캐치할 수 있었다고 해야겠다.
플라잉 로터스를 들으며 나는 가끔 생각한다. 플라잉 로터스도 재즈 힙합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실제로 재즈 음반들을 찾아 듣다 보면 플라잉 로터스 비슷한 느낌을 주는 음반을 자주 만난다. 물론 스타일이 비슷하다는 건 아니고, 겉으로 듣기엔 무질서한 소리들의 집합인 듯하지만 알고 보면 철처한 계산 아래 진행되고 있는 그런 음악, 최소한의 질서에 수렴되는 최대한의 자유, 뭐 그런 느낌이 비슷하단 소리다. 재즈 힙합이라는 말은 이제 거의 죽은 말(혹은 유행 지난 말?)이 되어 버린 것 같지만 그럼에도 계속해서 쓰여야 한다면, 지금껏 쏟아져 나온 식상한 조립식 음악들 말고 재즈 장르 속에서 찾아낸 좀 더 새롭고 참신한 소스들을 힙합으로 버무려내는 음악이 재즈 힙합이라는 이름을 이어받았으면 좋겠다. 말이 쉬워 재즈지 정말 엄청나게 많은 스타일들이 묵은 재즈 음원들 속에서 숨쉬고 있으니까 말이다.
내가 보기에 이 앨범은 '재즈 힙합'이기 이전에 '리얼 힙합'이다. 옛 음원을 이렇게 자유자재로 살려 쓰는데 이게 리얼 힙합이 아니고 뭘까. 하긴 재즈 힙합이든 리얼 힙합이든 써 놓고 보니 되게 웃긴 말인 것 같다. 말이 다 무슨 소용일까. 아직은 이 앨범 라이센스로 쉽게 구할 수 있다. 안 사신 분들 얼른 사세요, 라는 식상한 말로 글을 맺어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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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pros : 잘 읽고 추천 하나 드리고 갑니다..
글을 정말 조리있게 잘 쓰시는 것 같아요. ^^
보는 입장에서도 훈훈해지고 다시끔 들어볼 수 있게 하는 리뷰인것 같습니다.. 사실 재즈 힙합이라는 용어 자체가 좀 말이 안 맞는다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어차피 힙합이라는 장르의 뿌리가 재즈에 기반을 뒀기 때문에.. 물론 지금 힙합이 얼마나 변화무쌍하게 되었는데 뿌리가 재즈임을 들먹이냐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락이 블루스와 컨트리의 결합으로 탄생된 것도 따져보면 힙합보다 더욱 심한 경우인데 말이죠..ㅎㅎ 정말 용어로써 스스로 범주의 틀에 제한시켜 버리는 것은 참으로 우스운 일 같습니다..
euronymous님 말대로.. 리얼힙합이라는 말이 정답인듯합니다..^^ [2010-03-18] |
음악에 대해서는 뭐...더 이상의 말이 필요없고..한국에서 이 음반이 라이센스 되어서 나온 자체가 굉장히 신기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반으로 가지고 있구요. LP슬리브라는 시도가 정말 과감하다고 생각될 정도 입니다.ㅎㅎ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좋은 음악을 많이 아주 많이 라이센스 시켰으면 좋겠네요. 일본반처럼 거의 원본과 비슷하게...아니면 더 멋있게 말이죠.~! |
90년대 말 범상치 않은 센세이션을 몰고 왔던 클래식 싱글들이 수록된
언더그라운드 재즈 힙합의 작은 교과서.
긍정적이고 진솔한 언더그라운드... 그 자체가 담긴
랩과 비트와 스크레치에 늘 감동합니다.
-mo'slow-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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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mang | 2006-07-02 09:27| 리뷰추천수 :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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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게도 라이센스에 LP 슬리브.
어찌될지는 모르지만 우선 앨범 컨텐츠는 우수하기에 기대해볼뿐. |
참 우려의 목소리도 많았습니다..근데 일단 나오고 난거 보니까 깔끔하고 괜잖네요.역시 백문이 불여일견
저는 미국반으로 소장하고 있습니다만..
속지의 친절한 한글 앨범소개와 싼가격,정답게도 찍혀있는 파스텔 뮤직 로고는 저의 머릴 줘어 뜯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합니다.한국 라이센스의 기념비적 사건이 해피엔딩으로 끝났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이건 뭐 앨범 리뷰가 아니고 푸념따위 아냐??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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