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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엔 음반점에서 먼지만 자욱이 쌓여있던 앨범들이 꼭 절판난 뒤에 미친듯이 리퀘스트되는 건 미국이나 한국이나 다를 게 없다. 4년 전에 소리소문없이 발매된 디제이손의 이 앨범도 작년 겨울쯤부터 서서히 재고가 동이 나기 시작하더니 어느덧 지금은 레어가 되어버렸다. 중고음반 게시판마다 적잖은 사람들이 디제이손 1집을 찾는다. 4년 전만 해도 '뭐 이런 음악이 다 있어?' '이게 무슨 힙합이야?' 라며 어리둥절해하던 많은 사람들은 시간이 흐르며 취향이 바뀌기라도 했는지 이제 와서 이 앨범을 '요 몇년 사이에 발매된 한국 힙합 앨범들 중 최고'라 꼽는다.
앱스트랙트 힙합이니 턴테이블리즘이니 하는 용어들은 워낙 많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 탓에 이젠 더 말하는 것도 솔직히 진부하다. 어찌됐든 이 앨범은 곰곰이 씹어가며 들어볼 만한 좋은 앨범이고 크러쉬나 EL-P의 팬이라면 굉장히 즐겁게 감상할 수도 있다. 어차피 보도자료도 다 있는데 굳이 뭔가를 더 설명하려고 하는 건 군더더기다. 나는 좀 다른 이야기들을 해보겠다.
디제이손의 앨범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설왕설래들을 떠올려보면 내가 지금껏 수없이 접해보았던 패턴 하나를 그대로 답습하는 것 같아서 무척 재미있다. 그건 바로 주류 음악시장과 동떨어진 취향으로 만들어진 앨범 하나를 가지고 '이 앨범은 좋다'와 '이 앨범은 나쁘다'로 마치 홍해가 갈라지듯 극과 극으로 맞서는 사람들의 무의미한 말놀음이었다.
음악을 즐겨듣는 사람들 중에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다음과 같은 마인드를 신주단지처럼 떠받들며 살고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좋은 건 좋다고 칭찬해주고 구린 건 구리다고 까줘야 한다'. 달리 말하면 전세계 음악시장에 풀리는 수많은 앨범들을 저마다 다른 앨범들과 미친 듯 경쟁하는 한 마리씩의 경주마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어차피 저 잘난 맛에 사니 내가 다른 사람들의 취향을 두고 뭐라 할 수는 없겠지만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발상이다. 자신의 취향을 믿고 자기 마음이 흘러가는 대로 음악을 즐기려는 태도와, 자신의 취향과 어긋나는 음악에다 대고 방정맞은 험담이나 늘어놓는 태도는 분명 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음반으로 사서 듣는 그 어떤 음악도 하룻밤만에 콧구멍 후비며 장난스럽게 만들지 않았다. 언더그라운드씬이든 메이저씬이든 음반 한 장을 만드는데엔 수많은 사람들의 노동력과 적지 않은 액수의 돈이 필요하며 어느 돈 많은 사람이 재미삼아 뚝딱 만들어보는 음반이 아닌 이상에야 자기 이름을 걸고 음반을 내는 모든 사람들의 심정은 당연히 비장할 수밖에 없다. 데뷔앨범을 내는 사람에겐 자신의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 되는 것이며 중견 뮤지션들의 경우는 삶의 보람을 찾는 수단이 되는 것이다. 물론 뮤지션의 사정에 따라 어떤 앨범을 만들 때엔 이런저런 형편이 여의치 않을 수도 있고 소속사가 홍보를 해주지 않아 앨범이 쥐도 새도 모르게 묻힐 수도 있다. 뮤지션이 아주 나중에 '이제 와서 말하는 거지만 그 앨범은 진짜 대충 작업했어요'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전 세계 그 어디에서 발매되든 일단 LP나 CD의 형태로 만들어져 출시되는 앨범들은 기본적으로 뮤지션과 스탭들의 피땀이 어려있는 노력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사실이 아닐까?
음악을 듣는 사람들은 그걸 너무 모른다. 음악 한 곡, 앨범 한 장 가벼운 마음으로 듣고 말 한 마디 툭 던지는 일은 너무나 쉽다. 음악을 만드는 일은 의지와 노력과 돈이 있어야 하지만 음악을 듣고 반응하는 일은 뚫린 귀와 생각할 수 있는 능력만 있으면 되기 때문일까? 미국 현지 발매일이 닥치기도 전에 엠피3로 풀린 음원들을 P2P로 낚아서 듣고 그날로 감상평을 올리는 풋풋한 사람들을 볼 때마다 솔직히 나는 좀 당혹스럽다. 너무 쉽게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시대가 되다 보니 음악에 대해 너무 쉽게 말을 하게 되는구나, 라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는다.
눈앞에 처음 만나는 어떤 사람이 한 명 있는데,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단점들이 그 사람에게 수두룩하게 있다고 해도 우리는 그 사람 앞에서 대놓고 "당신은 이러저러해서 나쁜 인간이야"라고 말하지 않는다. 누구나 어느 정도의 단점이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 심각한 피해를 주지 않는 이상에야 인간적인 단점은 그냥그냥 넘어가주는 게 초면인 사람에 대한 예의다. 그 사람과 더 가까워지고 나서 조심스럽게 말해줄 수도 있다. "너는 다른 좋은 점도 있긴 한데 이런 부분은 좀 고쳤으면 좋겠다." 이는 사람살이의 지혜고 소소한 배려다. 나는 이러한 마인드가 앨범을 한장 한장 챙겨듣는 수많은 사람들에게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입장을 바꾸어놓고 생각해보자. 내가 심혈을 기울여가며 없는 돈 있는 돈 다 긁어모아 앨범 하나 만들었는데, 갖은 고생해가며 배급망 타고 전국에 앨범 풀었는데, 막상 인터넷에 가보니 험담만 가득하다면, 더구나 나름대로 분석이랍시고 어이없는 논리로 떡칠을 해놓은 비판글도 눈에 띈다면, 아마 죽고 싶어질 것이다. '이런 부분은 더 잘 만들어볼 수 있지 않았을까'라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이런 형편없는 음악 들고 나오려면 왜 나왔느냐'라고 무지막지하게 까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그런 무책임한 비방 사이에서 도대체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언제부터 음악을 논문 심사하듯 샅샅이 따져가며 들을 줄 알아야 제대로 된 매니아처럼 행세할 수 있게 되었을까?
더 놀라운 점은 앨범 한 장을 듣고 마음껏 지껄이는 사람들 중에서 실제로 앨범을 돈 주고 사서 듣는 사람은 별로 없다는 사실이다. 특히 머리가 굵어지고 컴퓨터라는 것을 처음 만져보기 시작했을 때부터 오로지 음악을 MP3로만 들어온 나이 어린 친구들 같은 경우, 자기가 생각하는 좋은 앨범을 소개하면서 꼭 하는 말이 있다. '이 앨범은 소장 가치가 있어요'. 이제는 흔한 표현이 되어버렸고 나 역시 하도 많이 들은 나머지 그게 왜 코메디 같은 말인지 오랫동안 알지 못했다. 지금은 소장 가치가 있는 앨범만 돈 주고 사고 소장 가치 없는 앨범은 엠피3으로 듣는 시대다. 들을 가치가 있는 앨범은 돈 주고 사고 돈이 없거나 별로 안 좋아하는 음악일 경우 아예 앨범을 사지 않는(즉 음원을 접할 수 없는) 시대가 아니다. 내가 보기에 고작 엠피3만 들으면서 이 앨범 죽인다고 하는 말이나 구리다고 하는 말이나 어차피 같은 허튼소리들이다.
조금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어떤 앨범을 두고 쌍욕을 퍼붓거나 대놓고 나쁘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권리는 오직 그 앨범을 돈 주고 구입해서 열심히 들어본 사람에게만 있다. 왜? 그 이유를 말하라면 솔직히 별로 할 말은 없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밖에는 말 못하겠다.
엠피3의 음질은 내가 들어봐도 기가 막히게 좋다. 음원상의 질적인 차이는 거의 없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엠피3만 듣고 어떤 음악에 대해 찧고 까부는 짓은 그 앨범을 만든 뮤지션과 수많은 스탭들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다. 나는 앨범 한 장을 내 돈 주고 사서 듣는 경우에도 차마 함부로 비난을 할 수가 없다. 내 취향이 선이고 내 취향이 아닌 게 악인 것도 아닌데 내가 그런 식으로 비난을 할 권리가 있을까를 생각해보면 차라리 마음에 안 드는 앨범은 조용히 CD장 구석에 처박아두는 게 훨씬 나은 것 같다. 내 경우는 그렇지만, 마음에 안 드는 음악은 어떻게든 비판을 해줘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도 있다. 그 사람들에게 부탁한다. 제발 앨범은 돈 주고 사자. 돈이 없든 절판이든 앨범을 못 사 듣는 형편이라면 함부로 이빨 좀 까지 말자. 돈 주고 앨범 사서 들을 능력이 있더라도 제발 할말과 못할말은 가려서 하자. 엠피3도 인터넷도 없었던 십여년 전으로 데려다 놓으면 분명 무슨 음악 들어야 할지 몰라 어리벙벙하게 두 눈만 굴리고 있을 인터넷 세대 여러분들, 제발 좀 음악과 뮤지션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는 지키며 살자. 입 닫고 있으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제발 좀 두 번 생각하고 말하라는 거다.
디제이손 얘기하다가 옆길로 많이 샜다. 디제이손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두 패거리의 말놀음은 우리나라가 인터넷 강국으로 손꼽히는 나라인 탓에 음악을 생산하고 배포하고 소유하고 즐기고 이야기하는 문화 전반이 오로지 인터넷에 종속되어가는 기형적인 양상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나는 디제이손의 음악에 대해 입씨름하던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과연 몇이나 앨범을 돈 주고 사서 들어봤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설사 그들 모두가 제 돈 주고 앨범을 사서 들어보았다 하더라도, 그들의 말은 너무 쉽게 인터넷 공간을 떠다닌다. 인터넷으로 다운 받아 들어보고 금세 감상평을 작성하는 세상이니 실제로 앨범을 사서 들을 때도 그 버릇 남 못주는 모양이다.
음악을 듣고 나서 치밀어 오르는 감흥을 글로 표현해보고 싶은 충동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그리고 속에서 나오는 대로 자신의 느낌을 마음껏 표현하려는 욕구에 내가 함부로 제동을 걸 권리는 없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다만 안타까울 뿐이다. 어떤 앨범은 그 맛을 제대로 느끼는 데 십년이 넘는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예전엔 죽고 못살 정도로 끼고 살던 앨범이 어느 순간부턴 갑자기 싫어질 수도 있다. 과거엔 그렇게나 듣기 싫었던 앨범이 언젠가부터 귀에 찰싹 감길 수도 있다. 나는 음악에 대해 그토록 쉽게 말하는 사람들이 세상의 다른 현상에 대해서도 그렇게 쉽게 이야기할까봐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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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fo2030 | 2007-08-15 09:42| 리뷰추천수 :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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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보면 충격이 오는 앨범.
Meta와 성천의 랩은 거의 완벽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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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도 이런턴테이블리즘이 있다는게 놀라워요 진짜 제대로된 턴테이블리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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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hcduck | 2005-12-18 04:39| 리뷰추천수 :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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헥헥... 랩이 들어간 트랙은 즐길만 한데, 아직 인스트루멘탈로 된 앱스트랙트 힙합은 즐길 내공이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뭐, 성천의 가사는 여전하고... 메타의 변신이 의외로 놀랍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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